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선우 훈 (문단 편집) === [[김정기(일러스트레이터)|김정기]], [[석정현]] 차력사 발언 논란 === 크리틱M이라는 만화 평론 사이트에 기고한 <[[http://criticm.com/?p=5255|나의 작화 이야기 Ⅰ─ 김정기, 석정현이 그림을 잘그린다고?]]>[[http://archive.is/zq8eY|@]] 라는 칼럼에서 작화를 잘 해야된다는 의견을 '''쓸데 없는 노력을 강요 하는 것'''이라 칭하고, 작화에 공을 들이는 작가들을 '''차력사'''에 빗대었다. 그는 칼럼에서 자신의 작품 [[데미지 오버 타임]]이 선택한 방법론에 대해 설명하고 작품을 전개하는 데에 드는 노동력을 최소로 사용해 더 좋은 만화를 만들 수 있는 다른 요소들에 대해 고민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웹툰 작가를 준 연예인이라고 정의하고 조석, 주호민 작가의 사례를 끌어와 웹툰 만화는 출판 만화와는 달리 힘뺀 작화가 대세라는 주장을 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서술하는 내용인데, [[석정현]] 작가와 [[김정기(일러스트레이터)|김정기]]를 예시로 들며 그림의 퀄리티를 높이는 수련 등의 기술적 부분을 "데포르메에 대한 몰이해[* 석정현은 실사체와 만화체를 넘나드는 그림을 그리며 한국 일러스트계의 작화법에 막대한 영향력을 준 작가이고, 김정기는 국내 입시만화계의 대부이자 라이브 드로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작가다. 그림만으로 업계 톱클래스의 자리에 있는 이들이 데포르메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또한 김정기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만화)|터치]]와 [[토리야마 아키라]]의 [[닥터 슬럼프]]인데, 각각 힘을 뺀 그림체와 데포르메가 적극적으로 사용된 그림체를 지닌 작품들이다. 게다가 김정기는 개인적으로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그림보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그림이 더 잘그리는 것 같고 본인 취향에도 더 잘 맞는다고 한 적도 있다. 토리야마의 그림체가 이노우에에 비해 가볍고 캐주얼한 화풍을 지향하는 걸 생각해봤을 때 '데포르메에 대해 몰이해'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와 국수적 시각[* 일본 만화는 물론이고 영미권 [[그래픽 노블]]만 하더라도 실사적 작법을 적용하는 경우는 허다하고 한국 작가들이 쓰는 이런 작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해보면 퀄리티를 높인 실사체나 실사에 근접한 작화를 국수적이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망가는 벗어버려!"라는 표어를 문제삼은 듯 한데, 당시 논란이 많았던 그림은 맞지만 그렇다고 국수주의라는 주장은 확대해석이다. 오히려 당시 석정현 작가가 일본풍 그림체에 대한 [[그림체#s-2.1|과격한 반감]]을 보였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자세한 사항은 [[석정현]], [[그림체]] 문서 참조.]"으로 정의하며 쓸데없는 노력이나 차력쇼라는 폄하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칼럼 내용은 해당 작가 이전에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게 된다. '계속 웹툰을 그리게 된다면, 조금 더 게으르게 그리되 ‘노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라고 끝맺은 선우 훈의 이 칼럼은 일부의 부분에서는 맞는 표현이다. 주간 1회 내지 2회에서 연재되는 웹툰은 그 특성 상 장기적인 기간을 바라보고 연재되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작화 수준이 높은 작화의 웹툰이 간헐적으로 올라오는 것은 지양해야 하는 태도이며, 차라리 살짝 힘을 뺀 상태로 정기적으로 연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밀도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예시로 든 이 논지를 옹호하기 위해 예를 든 작가들이 웹툰 계의 유명 작가이지, 웹툰 작가 전체나 웹툰이라는 장르 자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으며, 이들과 같은 일부 소위 '힘 뺀 작화'의 작품들을 웹툰 전체의 성향으로 확대해석함과 동시에 이 전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언급함으로 본인 작품의 퀄리티에 대한 변명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받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만화에는 그에 맞는 그림체가 있는 것이 당연하고 화풍의 우열을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선우 훈이 실사 체 우월주의를 비판한 의견은 일부 관점에서는 맞는 표현이다. 그러나 선우 훈은 두 작가가 선택한 [[그림체#s-3.4|실사체]]와 [[그림체#s-3.7|입시체]] 방식을 '멀고 험난한 길'이며 '만화와 그림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정의했다. 이는 좋은 작화가 좋은 만화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는 불변의 진리를 무시하고, [[양경일]]이나 [[오바타 타케시]], [[무라타 유스케]] 같이 스토리작가와 협업해서 작화적 퀄리티를 높이는 데에 주력하는 작가들을 비하하는 주장에 가깝다. 또한 더 나아가 작화수준을 '차력'에 비교하여 지향해야 할 목표는 아니라고 주장한 것은 주객이 전도된 표현이다. 수준높은 작화를 계속 이어가며 웹툰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요소가 분명하며, 스토리나 도트를 통해 작품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는 표현방법에 대한 고찰과 마찬가지로 이는 작가의 능력과 동시에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선우훈의 칼럼은 [[황석영]]이 문예창작과를 비판한 것[[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18&aid=0003346267|#]]과 대조된다.''' 황석영이 문예창작과를 비판한 것은 기술만 갖춘 '철학이 부재한 소설'이 늘어나는 현실에 대한 우려였다. 언뜻 보면 비슷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으나 전혀 다르다. 황석영은 기술이 필요함을 인정하면서도 기술에만 의존한 추세를 비판하지만 그것은 기술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본질적인 소설의 가치를 주는 요소인 '철학'의 부재에 대한 비판일 뿐이다. 선우훈이 작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면 차력이라는 단어를 통해 작화가 뛰어난 작가들을 비난하는 대신 철학이 부재한 작품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철학이 필요함을 주장했어야 옳다. '차력'이라는 단어 자체는 본래 약이나 신령의 힘을 빌려서 몸을 굳세게 하거나, 그렇게 얻은 힘, 혹은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걸 뜻한다. 평론가가 차력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비유한 것은 작화 수준이 높은 작가의 작품을 정상적이지 않은 요소의 힘을 빌려서 인기를 끄는 만화라고 비하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들 '''작품들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없이 기술적인 요소에 대한 회의심만 표출한다는 것''' 자체가 황석영과 그의 차이를 확연하게 한다. 소설과 달리 만화에서의 그림은 문장 이전에 작가로서의 가치를 구별하는 정체성이다. 사실주의와 인상파가 서로 추구하는 바가 다르지만 그들의 우열을 비교할 수 없는 것은 그 그림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녹아 들어갔기 때문이다. 레바의 읭읭이는 모든 것을 가볍게 바라보면서도 신랄하게 현상태를 저격하는 그의 철학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도구이다. 데미지 오버 타임은 도트로써 인간사회의 허무함을 보여준 선우훈의 도구다. 김정기의 그림은 그의 삶이 녹아들어간 인생 스토리이다. 해외에서 김정기의 기술을 인정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와 더불어 그의 삶이 지금의 그의 그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독자들로부터 작화에 대해 비판 받는 작가들의 대부분은 김정기와 같은 원로작가들이 아니라 선우훈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작가들이다. 작화의 수준이전에 그들의 작화는 모두 동일하며 그 안에는 그들의 삶이나 철학을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현상을 만든 것은 문예창작과와 마찬가지로 만화창작과다. 지금의 작화를 만들어낸 입시체계의 정점에 군림하는 이들이 바로 대학 교수들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평론은 어느 것 하나 정확한 요점을 잡아내지 못하며, 그저 차력이란 단어의 힘으로 기성작가들을 깔보고 조롱하는 글이 되어버렸다. 소설계와의 비교없이 만화 그 자체만을 본다 하더라도 현대사회의 많은 미디어 매체들은 종합예술을 자처하며, 그 이면에는 많은 요소들 중 어느 하나가 비교우위에 설 수 없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모든 요소를 골고루 갖추지 못한 작품은 독자에게 외면 받을 수 밖에 없다. '''선우 훈 작가의 데미지 오버 타임이 단순 도트라서 도트가 만드는 색상만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만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 메시지들과 그 외 요소들이 적절하게 들어가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재미있게 봤던 것이다.''' 그러나 칼럼에서의 그는 종합예술로서 각 요소에서 조화를 이룬 작품을 주장하기 보다는 스토리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한 석정현과 김정기만을 예시로 들어 만화란 작품에서 작화란 요소의 중요성만을 낮추는 방식의 서술을 한다. 이는 [[최규석]][* 심지어 그는 변기현, 석정현과 만화가 팀 삼단변신의 멤버였으며, 칼럼에서 제시하는 석정현의 그림 하단에서도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윤태호]], [[오토모 카츠히로]], [[미우라 켄타로]], [[모리 카오루]], [[이노우에 다케히코]] 같은 작가들이 작화 능력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서 서사적으로 성공적인 작품을 만들었느냐는 반론과 함께 이러한 작가들의 노력을 무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게 한다. 만화는 글과 그림, 연출, 스토리, 컷 배분 등을 모두 겸비한 종합예술이기에 [[도혼 유마]]나 [[주가이]] 같은 수준 이하의 작화 밸런스를 가진 만화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그리고 일정수준의 작화를 이루었음에도 텍스트의 분량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호불화가 갈리는 데스노트의 선호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만약 작화가 뛰어남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은 '''전체요소 중에서 작화만이 월등히 뛰어나 균형을 깨트리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작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요소들로 인해 균형이 깨졌다는 가정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해당 칼럼이 비난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명색이 평론가임을 자처하는 자가 비교 대상으로 자신의 작품을 거론했다는 것이며, 이러한 행동부터가 평론가적 자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동이란 점이다. 결국 이로인해 비평가와 작가의 신분을 혼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게 한다.''' 평론가로서 입상을 하는 등의 커리어를 쌓은 사실이 있지만, 작가 혹은 감독과 평론가를 겸하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작품을 평론에 끌어들이는 일은 결코 없음은 물론, 당장 상술했던 유명 작가들을 포함한 어떤 거장들도 스스로의 작품을 통해 다른 작가들의 방식을 폄하하는 경우는 없다. 반대의 경우 역시 그렇다. 다른 작가들의 결점이 보인다고 해서 자신의 작품이 옹호될 이유는 상식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잘 그린 만화, 고 퀄리티의 작화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을 차력이라고 폄하해서 역으로 해당 칼럼을 통해 만화 작법의 옳은 형식을 정의 내리는 아이러니한 태도를 취했고, 이 상황에서 선우 훈 본인이 차력이라 비하하는 작가들 수준의 그림 실력에 상당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작화에 대해 비난적인 어조를 유지하는 건지 본인 능력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결국 이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결과, 그는 도트 작업 방식을 취했던 데미지 오버 타임의 방법론에 대한 비판과 작품 퀄리티에 대한 변호를 하고 열등감을 풀기 위해서 평론가의 입장을 이용하고, 작화력 향상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그림의 퀄리티를 높이는 작가들과, 좋은 그림을 위해 공부하고 있는 수많은 다른 작가들과 지망생들을 폄하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결국 '힘을 뺐다' '잘 그린 것 처럼 보이는' 이라는 수사 뒤에는 은연중에 만화/웹툰의 제작과정에서 예술 창작으로서의 속성을 상당부분 배제하고 효용기한과 산출물의 질이 존재하는 공정으로서의 작업물로 환원시키는 의사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다른 측면, 특히 주제의식에 관련하여 만화 평가의 기준으로서 강하게 주장하는 것과는 배치되는 것으로서 우회한 표현으로 은폐된 것처럼 보인다. 참고로 김정기 작가의 경우 이러한 주제에 대해 [[http://news.donga.com/3/all/20160824/79951166/1|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좋은 만화는 그림만 봐도 이해되는 만화, '''그림 실력이 부족한 작가들은 말로 채운다'''."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이 부분도 상당히 편향된 의견임을 감안해야 한다. [[데스노트]]와 같은 소재를 다루는 경우엔 대사가 없이는 작품을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데스노트의 경우 작화와 스토리를 모두 갖췄기에 흥행할 수 있었다.] 김정기가 선우훈의 칼럼을 읽었는지 여부는 확인이 불가능하나 서로 간의 만화의 근본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알 수 있는 대목.[* 본문에서 더 나아가 김정기는 한국 웹툰의 빠른 연재로 인한 품질의 저하를 염려하며, 퀄리티 높은 외국 만화들이 웹툰에 진출할 경우 속도는 더 이상 이점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하였다. 선우훈의 칼럼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견해인 셈. 자세한 건 해당 인터뷰 및 [[김정기(일러스트레이터)]]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